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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치에서 도덕성을 포기할 수 없는가?

'괴물'공수처, '빅 브라더'가 된 대통령 ... 그러나 권력의 주인은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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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정영호
기사입력 2020-12-12

▲ ©편집인

 

국가와 권력의 비도덕성은 반기독교적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진통의 중심에는 도덕성이란 가치가 존재한다. 정치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와 정치인에게서 보여지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도덕적 불감증일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볼 때 윤리와 도덕이란 가치의 속성은 포기될 수 없는 것들이다. 국가와 권력이 '윤리와 도덕'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를 스스럼 없이 행할 때 기독교는 국가와 권력의 비도덕성에 침묵하지 않는다. 국가는 신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혁명적이었다. 세상 질서는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창조된 하나의 질서이기에 모든 것이 가이사의 것은 아니다.

 

국가와 권력에 대한 고전적 이해의 단점은 정치, 종교, 그리고 도덕을 구별하지 않은 것이며, 이 세가지를 다 누릴 수 있는 권위는 단 한 명뿐이었다는 점에 있다. 가이사와 파라오는 신성했기 때문에 고대 사회에서 국가 이외의 어떤 도덕적 호소나 가치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은 전혀 다르다. 정치, 종교, 그리고 도덕 위에 군림하는 통치자 혹은 유일한 권력을 기독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국가와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지도자들을 신성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타락한 세속적 질서 가운데 존재하는 우리와 같은 동일한 죄인에 불과하다.

 

물론 기독교적 관점이 국가와 정치를 악하거나 필요악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정치는 제한적 역할을 한다. 국가와 정치는 선을 택할 수도 있고 악을 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기독교적 관점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대리인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그리고 사랑에 기초한 통치 행위로 공동선을 추구하도록 국가와 정치에게 윤리와 도덕의 가치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 막스 베버와 그의 명저 [직업으로서의 정치]     ©편집인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정치와 도덕의 문제에 대한 탁월한 견해를 제시한 두 권의 책이 있다.  한 권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이며, 다른 한 권은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이다. 정치와 도덕에 관한 베버와 니버의 생각은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도덕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에서 국가는 물리적 강제력이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이용되는 공간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국가운영에 참여하는 정치가는 강제력으로 타인을 정당하게 강제한다.

 

그러나 베버는 정치가에게는 윤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치가의 윤리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있다. 신념윤리는 신념의 실현이 가져다주는 결과 보다는 신념의 실현 그 자체에 집착한다. 그래서 신념윤리에 집착하는 정치가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 때문에 그 결과가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나타나면 결과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책임윤리는 이와는 달리 어떤 결과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을 져야 하는 원리이다. 정치가는 신념윤리를 지녀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책임윤리를 지녀야 한다고 베버는 강조한다. 베버에게 있어서 책임윤리는 정치가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이해된다.

 

▲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편집인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베버와 유사한 논리를 전개한다. 니버는 인간은 다른 사람에 대해 이타심을 갖는 도덕적 존재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개개인의 인간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면서 하나의 사회공동체를 이룰 때 강제성과 통제를 장악하는 권력집단이 존재한다. 니버는 이런 권력집단이 공동체의 불의를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위험에 빠진다고 보았다.

 

니버는 정치는 윤리적 요인인 양심과 강제력의 요인인 권력이 상호이해충돌을 일으키며 불완전한 타협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권력집단은 강제력 동원을 정당화하고 이것을 자의적으로 사용한다. 이것은 인간의 공동체인 사회의 비도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니버는 개인의 도덕적 가치의 사회적 구현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비도덕적 사회에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니버는 이것이 가장 최고의 도덕적 인간이 보여주는 자기희생이라고 보았다.

 

괴물공수처를 손 안에 넣은 빅 브라더대통령

 

거대 여당이 ()의 정치로 공수처법 개정안을 밀어 붙였다. 토론과 타협의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수의 정치앞에서는 휴지통의 용도 폐기된 구겨진 종이에 불과했다.

 

공수처는 괴물이다. 입법·행정·사법의 모든 고위공직자들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면서 감시와 통제를 할 수 있다. 권력의 입밧에 따라 고위공직자들을 선별하여 손을 볼 수 있어 고위직 인사들은 권력에 맹종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정당하고 합법적인 비판이나 반대의 소리도 낼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대통령의 손 안에 공수처가 있으니 대통령을 비롯하여 집권 세력의 권력형 비리와 불공정 행위에 대한 어떤 의혹도 손을 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괴물을 직접 손 안에 넣은 권력은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 공수처는 대통령 직속기구이다. 대통령이 막강한 힘을 가진 공수처장을 직접 임명한다. 공수처장은 대통령에게 충성해야만 하는 절대적 종속적 관계에 놓여 있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공수처장은 맹종만 해야 한다. 결국 대통령이 빅 브라더이다.

 

▲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_news1)     ©편집인

 

정치에서의 도덕성, 포기될 수 없는 가치

 

정치에서 도덕성은 결코 양보되거나 포기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 정치인의 비도덕성이 권력집단에 의해 눈감아질 때 공동체는 매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다. 그것은 최고의 도덕성을 지닌 개인이 자기희생의 저항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괴물공수처를 권력의 수중에 넣었다고 해서 그의 권력 행사가 견제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힘을 소유한 만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권력이 비도덕적이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만 하는 저항이 뒤따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은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을 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세속적 권력은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 질서 가운데 제한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가이사의 것은 제한적이다. 가이사의 것은 그자체가 공동선이란 선한 목적을 드러낼 때만이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때 가이사의 것에 대한 심판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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